앙코르 기행

바이욘 사원

복있는 사람은 2006. 3. 5. 17:35

 

사원안에서 관광객들에게 향을 팔고 있는 사람

 

 

 

 

 

무었인지 아시지요?

 

 

 

 

 

사면불상군

 

 

 

 

 

 

바이욘 사원은 자비로운 관세음을 표현하고 있으며, 부처의 얼굴을 새간 탑을 사방에 거느린 중앙 금자탑의 높이는 땅에서 무려 45미터. 중앙 금자탑 주변에는 부처의 얼굴을 하나씩 새긴 여덟 개의 작은 탑이 별들처럼 둘러싸고 다시 그 주위 를 40개의 사면불탑이 피라미드형으로 솟아 있다. 49개의 탑(처음에는 53개의 탑이었다고 전해짐)에 새겨진 부처의 얼굴은 200개에 가깝다. 옅은 미소를 띄고 있는 부처, 명상을 하는 듯한 부처, 환한 미소를 짓는 부처등 이 관음상들은 각기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

 

 

 

 

 

 

 

 

 

 

입술꼬리가 가장 높이 올라가 크메르의 미소로 대표되는 불상이다. 관광객이 사진촬영의 배경으로 하기 위해 줄을 지어 서 있다.

 

 

 

 

 

 

 

 

참고로 살펴보는
  크메르의 역대 왕들


  1. 자야바르만 2세(Jayavarman Ⅱ) 802년 ~ 850년
       크메르 왕국의 시조로 자신을 힌두교의 시바신이라 칭하였다. 왕과 신을 같이 여겼으며       이 러한 
사상은 이후 시바신이 사는 메루산(수미산)을 형상화한 건출물을 짓는 계기가

되었다.

 


  2. 인드라바르만 1세(Indravaman Ⅰ) 877년 ~ 899년
      인도차이나 반도의 주변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한 왕으로 롤루오스 지역에 저수지(바레이.

      Baray)를 건설하는 등 관개시설을 마련하여 크메르 문명의 기반인 농업잘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부로 사원 건축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건축된 사원이 프레아코와 바콩이다.


  3. 야소바르만 1세(Yasovarman Ⅰ) 899년 ~ 910년
       인드라바르만 1세의 아들로, 롤레이 사원을 건설하였고, 앙코르 톰 남쪽 언덕에 프놈바켕이라는 
사원을 짓고, 롤루오스와 이곳을 연결하는 도로를 건설했다. 또한 프놈바켕 동쪽에 거대한

       저수지인 '동쪽의 저수지'를 만들기도 했다.


  4. 라젠드라바르만 2세(Rajendravarman Ⅱ) 910년 ~ 968년
       투철한 힌두교의 신봉자였던 왕으로 더욱 더 사원건축에 전념했고 시바신과 비슈누의 인도풍 
요소를 도입했다. 이 시기의 건축된 대표적 사원이 메본과 프레롭 사원이다.
       

  5. 자야바르만 5세(JayavarmanⅤ) 968년 ~ 1001년
       초기 크메르 사원의 최고 걸작인 반데이스레이를 건축했다. 여기서 확립된 크메르 문명의 건축
사상과 조각상에 대한 기본적인 구도는 크메르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본격적인

       크메르 문명의 창시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6. 수야바르만 1세(Suryavarman Ⅰ) 1002년 ~ 1049년
       남동 지역의 호전적인 성격의 귀족 출신으로 전략적 연합과 전쟁을 통해 왕위에 올랐다. 왕이 된 
뒤에도 정복전쟁을 통해 태국 남부와 라오스 남부 지방까지 영토를 넓혔다.
       새로운 지방귀족 세력 출신이었기에 여전히 왕을 힌두교의 신과 동일시하는 기존의 사상을 존중
하면서도 크메르 왕조 최초로 불교를 도입하는 혁신을 가져왔다.(불교 배경을 가진 말레이 반도 출신이라는 주장도 있다.)


  7. 우다야딧야바르만 2세(Udayadityavarman Ⅱ) 1049년 ~ 1065년
       아버지에 이어 해외정복을 계속해 나갔고 서쪽 메본 및 앙코르 톰내에 바푸온을 건립했다.


  8. 수야바르만 2세(Suryavarman Ⅱ) 1112년 ~ 1152년
       1065년부터 11세기 말까지 왕권쟁탈전으로 분열양상을 보이던 크메르 왕국을 재통일하고 베트
남, 미얀마, 말레이시아, 태국까지 영향력을 넓힌 크메르 왕조 최전성기의 황이다.
       또 크메르 문명의 대명사인 '앙코르와트'사원을 건축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편 이때부터 대규모 사원건축과 해외정복전쟁으로 국민의 생활이 피폐해져 크메르 왕조의
 멸망이 잉태되기 시작했다는 학설로도 주목받고 있는 왕이다.


  9.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Ⅶ) 1181년 ~ 1201년
       1177년 왕이 수도를 비운 사이 베트남 참족의 침공으로 수도 앙코르가 함락되고, 약탈되었다. 
당시의 황태자인 자야바르만 7세는 4년뒤 변경지방에서 즉위한 후, 적극적인 공략과 태국과의  전략적인 제휴로 참족을 몰아내고 수도를 탈환했다.
       왕은 수도 탈환 후 크메르 왕국 전반에 새로운 활기를 넣고자 참족이 파괴한 바푸온 사원을 중심
으로 새 도시인 '앙코르 톰'을 건설했으며, 타프롬, 프레아칸, 반데크다이 등 수많은 사원을 세웠다. 특히 크메르 왕조 역사상 자야바르만 7세가 주목되는 것은 선대왕과는 달리 대승불교를 받아들여 자기 자신을  관세음보살과 같이 생각하여, 크메르 문명의 정수 '바이욘'사원을 세운 점이다. 그러나 대규모 공사로 인해 그가 죽고 난 후 크메르 왕조는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참고문헌     <앙코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