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사람은 2006. 9. 25. 13:38

 

 

179호굴: 기원6세기(수나라 시기 건조)

중심주굴(중간에 기둥이 있는 석굴-178호굴 참조) 전실은 파괴되었고, 평평한 천정이며 위에는 일대화개(一大華蓋)가 그려져 있고 양벽에는 입불(서있는 부처)이 그려져 있다.  전실은 없어졌으며 후벽중 개분통도는 주실로 통하고 문양측에는 입불이 그려져 있는데 동쪽입불만 남아있다. 문통도내양벽에는 용왕이 그려져 있고, 주실은 둥근 천정이며, 양측에는 릉격인연과 본생고사가 그려져 있으며, 전벽 둥근천정에는 도솔천설법이 그려져 있다. 두통로 천정외측벽에는 입불이 그려져 있고, 서통로내측벽에는 사리를 빼앗는 모습을 그렸다. 동쪽통로 내측에는 사리를 나누는 장면이다. 후실은 세로된 둥근 천정이며 그림은 두통로 천정과 같다. 서측벽에는 지락보살상(악기를 연주하는 보살상)이 그려져 있고, 동쪽벽에는 입불이 그려져 있으며, 전벽은 범관도(梵棺圖), 후벽은 열반도가 그려져 있다.

 

180호굴: 당조때 건조함

중심주굴 이다. 전실대부분은 허물어 졌다. 양벽은 잔재해 있으며 전벽은 없어졌다. 후벽개문 통도가 주실로 통한다. 주실은 종권정(從券頂), 정벽중간에 큰 부처가 조각되었다.  후실은 횡권정(橫券頂), 본 석굴의 벽화는 보존이 비교적 잘되었다.

 

 

 

 

문명대 교수 중국실크로드기행 서역 ·천산남로

 

키 질 석굴 …… 인도 ·이란 ·증국적 요소를 조화시킨 가장 서역적인 석굴

 

쾌청한 25일 1O시 1O분, 염수계곡을 지나 키질석굴로 향했다. 11시에 초르타크산록의 기기묘묘한 경관속으로 들어선다. 천공의 조화로 기묘하게 보이는 바위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은 마치 요괴들이 곧 나타나서 순례 중인 혜초나 현장을 납치해 동굴 속으로 사라질 것 같은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염수계곡 옆길을 따라 곧장 달려가서 황막한 사막을 횡단한 뒤 무자트강이 내려다보이는 계곡길로 내려가면 곧 거대한 절벽에 무수한 석굴이 나타난다.

이처럼 기막힌 조화로 이루어진 염수계곡의 기기묘묘한 초르타크산들을 끼고 1시간 3O분을 달려 키질석굴에 도착한 것이다. 앞에는 무자트 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이 북안에 깎아지른 절벽이 연이어 있는데 2M 절벽에 걸쳐 뚫려있는 수백 개의 굴들이 바로

  키질석굴이다. 현재 2백 36개의 굴이 확인되었지만 더 많이 발굴될 것으로 보인다.

  흙 이 석굴은 인적이 드문 벽지에 있는 탓인지 회교도(回敎徒)들의 파괴는 덜 심하지만 소련, 독일의 그륜베델(3회) 르콕(3회) , 일본인 오오타니 (2회) 등이 이곳 벽화들을 대량으로 약탈해 갔다.

이런 사실은 보존이 상당히 잘 된 편인 77굴에서 더욱 분명하게 볼 수있다 77굴에는 중심 본존불(本尊佛)이 없어지고 본존불 광배가 벽화로 잔존하고 있으며 이 오른쪽 벽에는 소련문자가 깊이 새겨져 있고 벽화를 뜯어간 흔적도 보인다. 3세기에 만들어진 키질 최고의 17굴에서 1O세기의 석굴에 이르기까지 의 벽화와 불교 미술들로 가득찬 키질석굴은 대승소승의 불교미술에 인도, 이란 ·중국적 요소를 조화시켜 가장 서역적으로 만든 특징 있는 미술로 세계에 알려져 있다. 이 석굴과 관련, 우리를 안내해 준 쿠차 석굴연구소의 사효명 (史曉明) 연구원은 일본인 오오타니가 이 석굴에서 떼어 간, 그래서 현재는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벽화 자료를 보내주었으면 좋겠다고 간곡하게 요청했다. (현 서역관에 특별 전시하고 있음)

 

 

서역 민속 가무

 

식사후 1O시부터 시작하는 쿠차 가무단공연을 보러 갔다, 이 가무단은 옛 쿠차의 전통을 가장 잘 지키고 있다. 실크로드가 한창 번영하고 있을 때 쿠차에서는 관현기악이 유명 했다고 『대당서 역기』에 전해진다.

이 전통은 쿠차현 가무단歐舞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악대와 가수로 이루어진 이 가무단은 5O여 명 이나 되는데 전통가무와 가극 그리고 일종의 만담 비슷한 화극(話劇)을 공연하고 있다. 노래는 독창, 중창, 3중창 등 다양하고 악기도 탄부르(5현비파), 사타르(13현), 도타르(만돌린의 일종), 기자크(바이올린과 유사), 다프(手鼓 ; 탬버린과 비슷),니글(標鼓), 나이(橫首), 소나이, 카나이 등 매우 다양하다.

쿠차 악기가 당나라( 이기의 시 690-751)에서도 인기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쿠차 피리는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