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숙성 돈황현성서 70km 고동탄(古董灘)에 위치, 탄은 일찍 대량의 한대문물(동활촉, 오주전, 석마, 도자기쪼각)이 표출되어 이름 날리게 되었다. 고대중외 육로교통의 인후로서 실크로드 남쪽 필히 경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당대시인 왕유의 “권군경진일배주, 서출양관무고인”시가 전해지고 있다. 고성관동은 논이며, 먼곳에는 수창성 페허가 남아있고, 삼면은 사막으로 류사가 망망하여 일망무제하다.
양관 북쪽산둔성이에는 한대의 봉화대가 있는데 보전이 잘되어 있다. 동쪽은 홍산구이며, 서쪽에는 남북방향의 깊은 골짜기가 있는데 길이 20m에 달하며 골자기에는 샘물이 흐르고 있다. 양안에는 한조 무덤이 여러곳 있다.
사마천의 에는 “양관은 현 서쪽 6리(3km)에 위치해 있다.” 고 기재, 근대인 향달은 <당대장안과 서역문명>란 저서에 “고양관에 서수창성 있다는 설은 고동탄을 가리킨다” 고 하였다. 그러나 청나라 <감숙신통지>에는 양관을 홍산구로 인정하였다. 청도광 <돈황현지>권1도고-<량관유적도>에는 홍산구를 양관으로 표기하였다
중앙연구원언어연구소집간>(제1본) <양관유적고>에는 고동탄은 한대 이래의 양관이라 불렀으며 산수(山水)가 경유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풍사에 침식되어 성터가 매몰되었다고 전한다고 기술하였다.홍산구 서남으로 이동하면 약강(약-若, 강-오랑캐강-인터넷에 글자 없음)에 도달한 도달한다.
실크로드 남로의 관문으로 둔황에서 남서쪽으로 76㎞ 떨어진 곳에 있다. 사막 속의 칭하이 티베트 공로를 따라 약 2시간 들어가면 자그마한 오아시스 안에 있다. 당의 시인 왕유(王維)가 '서쪽 양관을 출하면 고인이 무(無)할지라' 고 읊은 곳이다. 오랜 세월의 모래바람에 침식당한 지금은 모래언덕 위에 벽의 밑바닥 흔적만이 남아 있을 분인데, 옛날부터 큰 바람이 분 뒤에는 병기, 도자기, 화폐 등이 발견되어 골동사지(骨董砂地)라고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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